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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나

송하나 펠로우는 북한 정권의 지독한 억압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구조적인 편견을 받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는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This profile below was prepared when 송하나 was elected to the Ashoka Fellowship .

INTRODUCTION

송하나 펠로우는 북한 정권의 지독한 억압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구조적인 편견을 받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바꾸는 캠페인을 이끌고 있다. 




THE NEW IDEA

남북 분단 70년 역사 속에서도 바깥 세계인 국제 사회를 지배해 온 북한에 대한 이미지는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헐벗고 굶주린 나라, 독재 3대 세습의 국가 권력 앞에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말살된 나라와 같은 것이었다. 지난 20년 간 전례 없이 이뤄진 북한에 대한 인권 옹호 활동이나 인도적 지원 활동 역시 과거의 이분법적인 프레임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며 매우 제한적인 영향력 밖에는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제 사회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변화의 씨앗은 사람으로부터 싹트며 북한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프레임은 북한 주민들을 로봇이자 피해자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의 변화 잠재력에 있어서는 무관심했다. 송하나 펠로우는 평범한 세계 시민들이 ‘인간 대 인간’으로 북한 주민들도 나와 다를 바 없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임을 자각하도록 하는 공감에 기반한 접근 방식을 채택했다. 

따라서 송하나 펠로우가 설립한 Liberty in North Korea (이하 LiNK)는 바뀌지 않는 문제 현상에 집착하지 않고 “변화의 진원(hot spots of change)”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해왔다. 예를 들어, 기존 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장마당 세대(북한 주민의 44%를 차지하는 29세 미만의 청년)처럼 일반 북한 주민들에 비해 이미 변화에 노출되거나 변화를 만들 잠재력이 높은 사람들을 임파워하는 방식으로 북한 사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이 확산되도록 돕는 것이다. 이처럼 LiNK는 탈북 청년들과 함께 일하며 탈북 난민 구출 및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새로운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인들이 북한 내부에 미치는 영향력을 높인다.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주요 출처인 주류 국제 언론 매체들을 공략하기 위해, 송하나 펠로우는 기존의 북한 인권 단체들이 정치인을 대상으로 로비 활동을 하는 방식과는 달리 저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로비 활동을 벌이는 독특한 방식을 취한다. 즉, 국제적 언론인, 영화 제작자들과 협력해 북한에 대한 언론 보도 방향에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오래된 고정 관념을 변화시키기 위해, LiNK는 북한 담당 외신 기자들과 튼튼한 신뢰 관계를 개발시켜왔다. 북한 사회경제적 변화에 대한 가장 최신의 정보들을 기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주도적으로 전달하고 북한 주민들의 변화된 일상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 취재원을 연결하는 등 믿을 만한 미디어 파트너 역할을 한다. LiNK의 개입으로 더 많은 국제 주요 미디어들은 ‘고정불변한 독재 정권과 피해자인 북한 주민’이 아닌 ‘북한의 변화 가능성과 북한 주민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하는 기사들을 쓰게 되었다. 실제 LiNK의 새로운 관점이 적용된 기사는 2012년 이후 CNN, 가디언, BBC, NPR, KBS 등에 500회 이상 보도 되었다. 

새로운 관점을 저변으로 확산하기 위해, 송하나 펠로우는 LiNK를 평범한 시민 누구라도 북한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포지셔닝했다. 특히 냉전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기에 정치적 프레임 없이 ‘변화하는 북한과 북한 주민’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젊은 청년 층을 각 지역 사회의 핵심 전파자로 만들었다. LiNK는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세련된 시민 운동; 특히 최신 디자인과 기술을 활용한 영상, SNS 홍보 등 디지털 마케팅을 활용해 전개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통해 북미와 아프리카, 중동 등 17개국의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레스큐팀'이라 불리는 330개의 지역 챕터를 발족했다.  청년들은 LiNK에서 제공하는 마케팅 도구와 회복탄력적인 북한 주민들을 부각시키는 메시지라인을 활용해 온/오프라인 캠페인, 행사, 네트워킹 등을 열었다. 그 결과 LiNK는 2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캠페인에 참여했고 탈북 난민 구출 및 지원금을 누적 60억원 모금하는데 성공했다. 

국제 사회에서의 성취를 발판 삼아, 송하나 펠로우는 북한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이 가장 공고한 나라, 대한민국에 LiNK 사무실을 4년 전 개소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LiNK는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들을 활용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한국 사회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특히 미래에 북한-남한 간의 완충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밀레니얼 세대, 남한과 탈북 청년들이 같은 눈높이에서 교류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회들을 탈북 청소년 학교, 탈북 청년 지원 단체들과 협력하며 늘려 나가고 있다. 

 




THE PROBLEM

북한은 극도로 폐쇄적인 사회이기 때문에, 시민 사회의 접근이 특별히 더 어려웠다. 독재 정권은 2천 4백만의 북한 사람들의 기본 자유를 억누르며 인류와 격리시켰으며 주민들은 기근 등 온갖 종류의 고난을 당해왔다. 여전히 주민들은 이웃과의 자유로운 의사소통도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여행, 인터넷 사용, 외국인과 대화하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다. 체제에 대한 불평과 의심도 절대 금지된다.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서 영리하고 경험 많은 시민단체들도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덜 알려진, 가장 자유롭지 못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매우 도전적인 과제이다.

한편으로 국제 사회는 여전히 벼랑 끝으로 내모는 외교 방식을 지향해왔다. 식량 원조를 끊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화해도 새로운 길 모색도 어렵게 만들어왔다. 심지어 북한 정권 내 리더십이 바뀌면서, 국제 원조 단체들이나 언론인들도 더 이상 북한 내에 거주하기 어려워졌고 개성 공단 등 자유 경제 구역 사업도 움츠러들었다. 국제 단체 보고에 따르면, 내부적인 억압이 더욱 강화되면서 개방에 대한 흐름이 점차 주춤하고 있다고 본다.

이러한 고립은 북한에 대한 이미지를 심겨주었다. 외신들은 북한 정권을 성가신 불량 리더로 익살스럽게 표현하는 한편 북한 사람들은 광적인 충성심을 지닌 로봇 때로는 짓밟힌 희생자로 묘사해왔다. 북한 주민이 겪는 고통은 동정심을 유발시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잔혹한 정치적 억압이 사람들을 다르게 만들었고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만다. 억압이 지속되는 동안, 북한 밖 세상은 많이 변했다. 냉전 시대가 종식되면서, 식량과 무기 공급 줄이 끊겼다. 1994년 북한의 경제는 몰락하며 극심한 기근을 겪으며 주민들이 살기 위해 국경을 넘어 탈출을 감행했다. 기근 이후 북한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기근 이후에도 탈북인들은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전화 사용 뿐 아니라 생활비도 송금하고 물품도 배송하는 등 연락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현재 한국에는 3만 명의 탈북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어떤 탈북인들은 중국 등 여러 나라에 거주하며 일도 하고 결혼도 한다. 조사된 바에 따르면, 실제 탈북민들은 연간 1500만~2000만 달러(약 165억~220억원)를 송금하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장에서 식권들을 발행하고 노동자들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식량을 교환 할 수 있었는데, 경제가 몰락하면서 식권도 식량 교환도 없어졌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중국 국경 근처에서 식량을 구해오거나 시장에서 식량을 구입하는 경우가 일반적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핸드폰을 사용하거나 USB에 한국 드라마 등을 담아 시청하는 등 외부 정보 유입도 늘어나고 있다. 즉, 시장 경제와 자유로운 정보 유통이 북한 사회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내 세대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청년 세대는 북한 밖 문화에 열려있다. 이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서양 노래를 들으며 체제가 묘사한 외부 세계의 문화와 사회를 곧이 곧 대로 믿지 않는다. 송하나 펠로우는 고도의 정치외교적 톤을 줄이고 ‘변화와 사람’에 집중한 관점, 국제 사회의 더 많은 기관과 시민들과 자원을 모을 것이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북한의 자유화에 공헌할 것이라고 믿는다




THE STRATEGY

송하나 펠로우는 두 가지 영역에 집중한다. 탈북인들과 직접적으로 함께 일하는 것, 그리고 세계 시민들이 북한을 보는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북한과 북한 주민에 대한 이미지는 미디어를 통해 창출되고 영속되곤 한다. 송하나 펠로우는 세계 미디어들이 북한 주민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소위 ‘김정은과 핵’과 같이 평범한 시민들로서는 비정상적인 독재 정치에 관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북한에 대해 보도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게 만든다. 따라서 LiNK는 난관을 겪어 온 북한 사람들의 패기, 강인함, 회복탄력성에 집중한 메시지를 중심으로 사람들로부터 시작된 변화들을 전달함으로써, 시민 레벨에서도 북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음을 강조한다. LiNK는 주요한 외신 기자들과 영화 제작자 및 정책가를 성공적으로 섭외했고 이들이 북한에 대해 보도하는 방식 뿐 아니라 사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했다. 학계에는 탁월한 북한 정보 분석 능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미디어에 능통한 사람은 소수이다. LiNK는 북한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각 지역의 변화에 관한 최신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고 미디어 역량을 발휘해 로이터 등 외신 기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제공할 수 있었다. LiNK는 효과적으로 미디어를 로비하고 매체의 커버리지에 영향을 주었고 CNN, 가디안, BBC, NPR, KBS, 알 자지라 등의 주요 매체에 500회 이상 인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결과를 낳았다.

하향식 전략인 국제 미디어와의 협력 외에도, 송하나 펠로우는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인 ‘밀레니얼 세대’와 함께 일하며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이는 기존의 북한 관련 단체 중에서 보통의 청년들을 문제 해결사로 연계한 새로운 시민 참여 방식이다. LiNK는 중,고등,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지역별로 챕터(Rescue Team)을 형성하고 탈북인을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모으며 ‘사람 중심’의 관점을 지역사회에 확산시켰다. 이로써 중국, 남아프리카, 아랍 등지의 17개국에서 330개의 챕터이 발족되었다. 젊은 세대에 소구하는 국제적인 온오프라인 캠페인과 로드 트립 등 LiNK는 수 십 만의 사람들, 특히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청년들에게 접근했다. 풀뿌리 운동을 통해 그들은 미국과 캐나다 등 16개국에서 2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났으며 약 1만 5천명의 지원자들은 온라인을 통해 모금, 자원봉사, 이벤트 개최, 온오프라인 캠페인 참여했다. 이들의 협력은 지금까지 누적 60억원 가량의 기금을 모아 LiNK 활동과 북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는 북한 관련 단체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활동이자, 모금 액수이다. 그리고 LiNK는 챕터를 통해 모금된 돈은 100% 구출과 정착을 위해서만 사용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지원이 필요한 탈북민에게 어떤 조건이나 돈을 전혀 요구하지 않는다. 

국제 청년들의 힘을 모아 만든 변화처럼, LiNK는 북한 사회 내 ‘장마당 세대(북한 주민의 44%를 차지하는 29세 미만의 청년)’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이들은 정부로부터 식량을 공급 받아본 적도 없고 안정적인 독재 정권의 유익함에 대한 기억도 없는 새로운 세대이다. 청년들은 시장 경제와 기술, 외국 문물에 노출되면서 이에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송하나 펠로우는 이러한 현상이 북한의 변화를 크게 촉발할 수 있는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탈북인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하면 그 가족들은 작은 규모의 사업을 시작할 자본금이 된다. 지금까지 북한은 ‘기업가정신’을 절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가장 억압적인 사회이지만, 90년대 이후 극심한 기근 이후 지하 시장 경제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를 제제해야 할 북한 공무원들도 뇌물을 받고 이를 눈감아 줄 수 있는 단계에 이른 만큼, 북한 내 사회경제적 시스템의 변화가 있었다. 따라서 더 많은 탈북인들이 새로운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할수록 그 영향력이 북한 내 거주하는 그들의 가족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만약 대한민국 내 탈북인 1명이 북한에 약 10명의 가족 및 친척과 연결되어 있다면, 이는 3만 명의 절반인 1만 5천명의 10배인 15만명에게 영향력이 전달됨을 의미한다. 간접적이지만 매우 강력한 변화가 발생되는 것이다. 이는 매우 천천히 작동하고 장기적인 사안이라 측정하기 어렵지만, 이는 북한 내부의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송하나 펠로우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탈북인과 함께 일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 북한 변화의 주역으로서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보았기 때문에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탈북 난민 구출 및 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사람들은 착취 혹은 강제 북송의 위험에 봉착하게 된다. LiNK는 이러한 북한 난민들이 대한민국 또는 미국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17년 현재까지 LiNK는 탈북인과 동반 자녀 618명을 안전하게 구출하고 자유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중 82명은 인신 매매를 당한 경험이 있었다. LiNK는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키며, 탈북인들에게 구출에 필요한 돈을 제공하면서 그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는다. 지난 3년간 송하나 펠로우의 목표는 750명의 탈북인를 구출하는 것이었고 (지난 해보다 30% 증가) 올 해 안에 200명 구출을 목표하고 있다. LiNK는 정착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 진행하고 지지 기반과 사회적 자본 형성을 위한 네트워킹 등에 초점을 두어 이들의 안정적 정착과 잠재력 발현에 집중하고 있다. 더 나아가 북한, 남한, 세계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다 함께 배우고 교류하고 행동하기 위한 여름 캠프도 준비 중이다. 그녀의 팀은 장기적으로 탈북민 정착 지원이 북한의 자유화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측정하려 한다. 

LiNK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본사를 두고 있고 5년 전에 서울에 한국 지부를 출범시켰다. 송하나 펠로우는 20여 명의 정규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며 단체 연간 예산은 2016년에는 28.5억 원, 2015년에는 26억원, 2014년에는 25.8억원이었다. 




THE PERSON

송하나 펠로우는 미국 미시간에서 태어나 뉴저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미국 문화에 최대한 잘 적응하기를 바란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잘 자랐다. 의지가 강하고 활동적이었던 송하나 펠로우의 어린 시절은 바이올린, 스포츠 활동을 즐겨했고 책벌레였다. 특별히 그의 어머니는 자신감, 자존감, 강력한 의지, 독립성 회복탄력성을 가진 여성이었다. 70년대의 아시아계의 이민자로서 새로운 사회에서의 적응에 장벽이 있었겠지만, 부모님은 3명의 자녀에게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내고 만약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어내라는 가르침을 몸소 모범을 보였다. 그녀는 10세의 나이에 그녀의 부모가 용돈을 주지 않으면 아기 돌봄이 서비스를 할인가에 제공하는 쿠폰을 만들어 이웃집의 우편함에 넣어두곤 했다. 그리고 후에는 피아노 레슨으로 사업을 확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정 환경과 경험은 삶의 기반이 되었다. 

뉴욕주립대학교로 진학한 후, 월스트리트 근처 아파트에서 친구와 함께 지냈다. 2001년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가 비행기 테러를 당하던 그 날 송하나 펠로우는 근처 현장에 있었다. 그는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는 순간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곧 건물이 무너지며 자욱한 연기에 뒤덮였고 있는 힘껏 그곳으로부터 도망쳤다. 그 후, 몇 주간 송하나 펠로우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자원 활동을 하며 도시에 머물렀다. 그 사건은 삶이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가슴에 새겨주었다. 

송하나 펠로우의 조모는 70여년 전 평양을 떠나며 그녀의 남편과 두 아이를 다시는 못 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진 뒤, 조모는 서울에서 새로운 가족과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의 모친은 한국 전쟁 직후 출생했으며, 20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이 모든 것은 송하나 펠로우에게 ‘내가 만약 북한에서 태어났더라면’이라는 기묘한 연결성을 암시했다. 그의 조모는 북한에서의 삶에 관해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한 탈북인가 그의 9세 시절 가족과 함께 혹독한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생활을 저술한 책을 읽으며 그의 조모가 살던 고향에 관한 호기심을 자아냈고, 책을 점점 더 읽을수록 북한의 이슈가 형언할 수 없는 복잡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의 크기에 비해 굉장히 적은 규모의 지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재미교포로서 문제에 맞설 행동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당시 송하나 펠로우는 미국의 광고 회사에서 한 브랜딩 전략 담당자로 일하고 있었지만, Liberty in North Korea라는 학생 단체에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LiNK의 활동 기금이 고갈되던 2008년 송하나 펠로우는 직장을 그만 두고 LiNK 대표로 부임하며 단체를 새롭게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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